시험 기간인 덕분일까, 한동안 붙잡지 않고 있던 '글'이라는 것의 주변을 다시금 배회하고 있다. 오랜만에 괜찮은 소재 몇 개를 구했다. 작가 지망생-이라고 쓰고 '미등단 작가'라고 읽는다-조차 아직은 되지 못한 내게 좋은 소재란, '좋은 작품에 전제되는 소재'가 아니다. 다만 특별한 어려움 없이 완결되어 있고, 여러 가지로 사고의 방향을 적용시킬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끄적거렸던 것 중에 '섬'이라는 소재가 가장 좋았다. 이런 관점에서 말이다). 좋은 소재. 그런 것을 못 찾으면 결국 이상한 글을 내뱉곤 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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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를 쓰던 친구 하나가 어설프게 소설에 도전했다. 게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실로 나쁘지 않은 소재와 플롯을 지닌 소설이었다. 다만 실로 나쁜 대사처리와 소설적 미학과 허섭스런 문장을 가진 엽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해서 나는 '이 소재, 내가 가져간다'라고 그에게 이야기했다. 정말로, 실로 나쁘지 않은 소재와 플롯과 스토리를 지닌 엽편이었다. 탐이 날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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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꿈에서 나는 바이섹슈얼이었다. 어떤 남자를 사랑했다가 이내 곧 어느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감각과 감정들이 눈을 뜨고도 한참 짜릿하게 남아 있었던 밀도높은 꿈이었다. 역시 이런저런 설정들은 나쁘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나 잠시 생각하며 인물 설정을 어느 정도까지 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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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혹은 바이섹슈얼. 민감한 소재이며 논쟁적인 소재이며 선정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장난으로 혹은 취미로 글을 쓴다면야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겠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게 글을 쓰려는 입장에서 이런 종류의 소재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즐겁게 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고 '아주 나쁘지는' 않은 글을 쓸 만한 소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인생에서 두 명 정도의 게이를 만났다. 물론 더 많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 아웃팅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어린 시절의 친구라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고, 한 명은 지금도 친구인 녀석이다. 바이섹슈얼 여성도 두 명 알고 있다(마찬가지로 아웃팅한 것이 두명일 뿐이지 더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왔는지도 모른다). 여러 <왜곡된> 매체들과 그들 네 명과 알고 지내던 덕분에,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에 대한 글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누군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아무도 함부로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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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재로 단편을 써 볼 생각이다'라고 글을 쓰는 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간단히, 비웃었다. 그리고 진지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남성 이성애자로 추정되는 그는 언젠가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바이인 여성이었다고. 그래서 너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아, 그래. 그런건가. 라고 이야기하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런 소재들을 아무런 긴장 없이 잘 쓸 수 있는 그런 '재능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섣부르게 그러한 소재를 다루는 일은 그들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나는 니체가 '기독교도'를 사유하는 방식으로-일테면 실제 기독교도를 모욕하기 위해서 기독교도,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닌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기독교도를 사유하는-게이나 바이에 대해서 접근해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소설이란 '실제적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다만 '작품 내적인 의미'만을 제대로 잡아내면 그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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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친구는 내게 이렇게 쓰여진 메모 한 장을 건넸다.
재능이란 야구투수의 어깨처럼,
미술데셍 지우개처럼
쓰면 쓸 수록 닳아 없어지는 것이란 것.
포르노 그만 보고
시답잖은 문학회 술자리 걷어치고
그만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
학교에 시비를 세운 인간에 비하면
촌년이나 게이 타령이나 하는
그대는 많이 멀었음.
죽기까진 얼마 남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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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써야지. 쳇. 좋은 소재를 세 개 씩이나 가지고 있는 나는 적어도 지금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실로 게으른 내가 실제로 그런 것을 쓰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찬찬히 생각해보고,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냥 쓸 생각이다. 유괴라던가, 인육요리라든가 하는 천박한 주제를 가지고도 잘만 써 왔다. 소재는 소재일 뿐. 까뮈 정도 되면 '페스트'같은 소재로도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괴작을 낼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