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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신촌의 술집들이었다, 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 허용된 돈의 8할은 신촌의 어딘가에서 술과 교환되었다. 이를테면 군대에 가기 전과 군대를 제대한 후와 대학원에 입학한 후에 큰돈이 생겼다면 높은 확률로 더블듀스에서 커티삭이나 잭다니엘을 주문했다거나, 작은 돈이 있으면 서른즈음에에서 데드락 한 잔을 마셨다거나 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떤 의욕이 없는 요즘에도 술은 마신다. 아마 독수리주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면 매일처럼 다녔을 법한 그런 나날들이다. 그런 날들에서 벗어나고자 편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모기장에서 고민했다. 모기장의 고양이들은 내 고민과 상관없이 노트북 파워케이블을 건드려댔다. 애초에 무엇인가를 고민할 열의나 능력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게 있었더라면 지금 논문을 쓰고 있거나 무언가 더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내게 주어진 말린 옥수수를 뽀드득 씹는다. 나보다 제대로 된 친구다. 그러고 있는 동안 편하게 쓰여진 어떤 책이 떠올랐다. 한 때 미친듯 홀렸던 작가의 책이었다. 세계 미식가 협회의 일원인 그는 음식에 관한 짧은 포르노 소설들을 엮어 책으로 출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과외하던 학생에게 그 책을 빌렸었고, 그냥 그렇게 먹어버렸다. 그녀는 꽤 괜찮은 대학에 갔었고, 아마 이제 졸업도 했을 테니 별 상관없다. 별 상관없는 그런 이유로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신촌 음주 협회의 일원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문화기술지도 아니고 보건도 아니고 과학/기술/지식사회학도 아니다. 하물며 삶이나 사랑이나 청춘 혹은 학문에 대해서는 염병할 젬병이다. 그래서 신촌에, 신촌의 술집에 대한 짧은 글들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예전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학부 시절 '지리' 수업을 들으며 텀 페이퍼로 버제스의 관점에서 바라본 신촌의 술집 배치에 대한 연구논문을 썼었다. 엉망이었지만 재밌게 쓰여졌고 나름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 그 글이 엉망이었다면 신촌의 술집에 대한 글 같은 것을 다시 쓸 엄두 따위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 쓰고 싶던 글이 있기는 했다. UMC의 미친 노래 98학번에 꽂혀서 02학번이라는 글을 쓰고 싶었었다. 88만원 세대 이후로 쏟아져 나온 세대론에 대해 한 마디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간판에 매혹되어 들르게 된 향언니에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새로운 02학번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와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이내 글쓰기를 포기했다. 스스로에 대해 쓴다는 것은 뭐랄까 자위행위와 유사하다. 힘이 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렇게 달콤하지는 못하다. 몇 그람 정도의 하얀 유쾌함을 쏟아내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건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02학번은 그렇게 포기했다. 그러고 나니 결국 쓸 수 있는 것은 신촌의 술집에 대한 것 밖에 없었다. 아, 그는 내게 '태'의 마티니가 신촌 최고라고 이야기했다. 반쯤은 동의한다. 신촌의 술집들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했다. 물론 한 친구처럼 벨벳언더그라운드가 망한 폐허에 숨어들어가 테이블 위에서 섹스를 했다거나 포석정에서 앉은 채로 테이블 위에 하루치의 내면을 쏟아놓고 그것을 알알이 헤아렸다거나 한 적은 없다. 기껏해야 내가 한 문제적인 일들은 구석진 술국집에서 괜한 시비를 건 옆 테이블 사람들의 테이블 위에 소주병을 내리쳤다거나, 서른즈음에에서 결혼한 누나라든가 친구의 여자친구라던가 하는 사람들에게 키스를 해 본 정도에 불과하다. 써놓고 보니 결국 내가 문제가 아니라 서른즈음에가 문제인 듯 하다(그런 문제적인 술집에서 나는 직원으로 일한 적도 있었다. 세 달 정도. 지금까지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해 본 일 중에 두 번째로 즐거운 일이었다). 낭풍에서 김치찌개를 뒤엎는다거나 태에서 음악 소리를 줄여달라거나 하는 중대한 실수를 한 적은 없다. 오히려 신촌의 술집들, 나의 홈그라운드에서 나는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인 적이 많았다. 술을 사준다고 해서 쫄래쫄래 따라 나갔다가 술을 사준다는 여자는 고주망태가 되어 플로어에 온몸을 다 토해놓은 덕에 내가 학생증을 맡기고 외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토하기 편한 그런 종류의 술집에서 소주를 진탕 마시고 그랬으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문제는 간바리야에서 꽤 비싼 술과 꽤 비싼 안주를 먹고 그랬었으니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동생과 내 친구의 협공을 당한 적도 있었다. 도어즈였나. 갑자기 밤 열한시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내 친구 누구와 술을 마시고 있으니 빨리 오라는 그런 전화. 도어즈의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내 친구는 뒤에서 내 목을 졸랐고 동생은 나를 두드려패기 시작했다. 피우던 담배를 목을 조르던 손 위에 끄고 목을 조르던 내 친구를 동생에게 패대기친 후에 우리는 평화적으로 술을 마셨었다. 술집에서 내가 힘들었던 것처럼, 술집이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레몬과 얼음이 함께 나오는 마티니를 내게 주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구석의 바라거나, 기억에는 분명히 롱아일랜드아이스티가 굉장히 맛있는 집이었는데 시키고 나니 이건 뭐 콜라에 캔 실론티를 섞은 듯한 액체를 내놓는 블루버드라거나(오히려 그날 함께 주문한 블루버드의 오리지널 칵테일-브랜디 베이스였고 굉장히 유치한 이름이었다-은 상당히 훌륭했다). 써놓고 보니 어딘가 우울한 글이 되어버렸다. 신촌의 술집들은 우울한 곳이 아니다. 유쾌하고 싶은 당신과 나에겐 유쾌한 술과 글이 필요하다. 그럴 때라면 역시 놀이하는 사람들이 어떤가 싶다. 외국인, 섹스팝, 맥주, 허옇고 발그무레한 조명, 진토닉 피쳐, 춤, 그리고 춤, 춤. 글래머러스함이 싫은 당신이라면 우드스탁이 어떠한가. 물론 어딘가 골빈 남자들이 혼자 앉은 여자들에게 작업하는 꼬라지를 보다 보면 트레인스포팅의 벡비처럼 미지근한 기네스 파인트를 던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이도저도 다 싫다면 댄디하게 음악당에 가보는 것도 유쾌하다. 혹은 머리를 비우고 시바에서 춤을 춤을 춤을춰도 괜찮다. 하지만 파티날이 아니라면 뭐. 파티라, 파티하면 역시나 몽환이다. 퀴어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과 후배가 '어머 선배도!?' 라고 물어오는 경험을 해 볼 수도 있고 '아니 난 아닌데 뭐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경험도 해 볼 수도 있다. 굳이 춤과 음악이 즐거울 필요는 없다. 맛나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 고기가 죽도록 땡기는 날이라면 구월산 왕순대나 황소곱창이 킹왕이다. 혹은 딴건 그냥 그렇지만 오코노미야키 하나는 작살인 이자까야 '이자까야' 라거나 역시 딴건 그냥 그렇지만 나베하나는 뇌쇄적인 이자까야 다이몬에 가는 것도 즐겁다. 아, 거기는 가끔 몸에 문신하고 쇠사슬 두른 나이 좀 있는 아저씨들이 가끔 다녀서 의외의 유쾌함이 벌어지기도 한다. 혹은 신촌에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모던바/토킹바의 선두였던 굿바도 나쁘지 않다. 언니들과 수다나 진하게 떠는거다. 내 친구 중 하나는 거기서 일하는 언니와 사귀게 된 적도 있다. 크흐. 난 못해봤는데. 하긴 뭐 내 동생은 노량진의 어느 바에서 언니와 수다떨다가 신나게 밤새 쉐이킷붐붐 한 적도 있다는데(결국 문제는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의 문제다). 역시 그래도 술이 좋다면 술의 제왕인 와인을 마시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얼마전 와인 랜덤셀렉션에서 팔만 오천원짜리 와인을 뽑아서 일주일간 라면만 먹으며 지내게 되었던 어른들의 와인바 파파야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가격이 부담이라면 같은 와인을 거의 삼분의 이 가격에 파는 테스도 나쁘지 않다(여기 빈티지 재고가 많다. 딴거 집어치우고 베가스3가 아직 있다는 것으로 끝이다). 그런 걸로 성이 안차서 리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면 역시 가격의 더블듀스와 가격의 마피아. 혹은 가격의 비어캐슬도 괜찮다. 750ml 리쿼들이 대략 5만원 전후에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저 셋 중엔 더블듀스를 추천하고 싶은데 더블듀스는 너무 문을 일찍 닫는다. 이 정도를 쉴새없이 늘어놓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 하다. 당신의 기분은 어떠한지. 업된 기분과 함께 즐길 친구들이라면 이제 소주를 마시자. 가정집 수준의 담백함을 자랑하는 요리로 유혹하는 향꽃의 고추장찌개나 푸짐한 양과 떠들썩함이 유쾌한 명월이네 정도면 어떠한가. 역사와 전통의 뻐꾸기네도 있다. 혹시나 조금 그런지한 술집을 원한다면 하아, 아쉬운 일이다. 그런지는 사라졌다. 식스팩이 이만원 하던 그리고 자취생이나 만들어먹을 법한 안주가 나오던(ex, 족발무침) 슬래머스는 사라졌다. 잘 사라졌다. 모든 안주 균일 오천원이었던 굴다리포차도 신촌 민자역사와 함께 사라졌다. 신촌 민자역사와 함께 섬급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무진기행도 자리를 옮겼다. 옮긴 자리에선 더 이상 예전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다모토리나 담 정도가 있을까. 어차피 세상은 떠나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커트 코베인도 죽었다. 히데도 죽었고. 까뮈도 죽었다. 일병 꺾인 동생의 지난 휴가였나 지지난 휴가였나, 그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형 니와마루 어디갔어?'. 가장 괜찮은 수준의 요리와 적절한 수준을 자랑하던 이자까야였던 니와마루는 동생이 나오기 일주일 전 정도에 문을 닫았다. 나는 그에게 '이제 너도 단골 술집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정도의 나이로구나.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지'라고 이야기했다. 그 다음 휴가 정도에 그는 애인과 헤어졌다. 푸우, 하지만 그렇게 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노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헤어짐들을 헤아려 우울해지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술집을 위한 글이다. 헤어진 술집들들을 헤아리는 것은 비교적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던 해 혹은 이듬해 정도에 어른이 되었다. 기자를 하던 동아리 선배는 어느 날 나를 섬에 데려갔다. 신촌에서 근 이십년 정도를 버틴 유서깊은 그곳은 내가 처음 다녀가고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운영하던 누님이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섬의 운영을 두고 섬의 단골들은 사분오열되었고, 하나였던 섬은 두어 개로 나누어졌다. 홍대 쪽에 하나, 연대 동문쪽에 하나, 그리고 연대 정문 근처에 하나(이건 없어졌다). 없어진 술집이라면 J-pop을 자주 틀어주던, 한채영을 15%정도 닮은 누님이 운영하던 현대적 이자까야 '잇빠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구로야끼와 소다와리가 굉장했는지, 화장실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성인 만화들이 굉장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없어진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어 그 길을 걸을 때마다 가끔씩 생각난다. 이자까야 하니 고전적인 이자까야 '단뽀뽀'도 가끔씩 떠오른다. 메로구이와 가이바시라가 상당했다. 주인은 서양화를 전공했고, 요리를 담당하던 주인의 누님은 일본에서 직접 요리를 배운 분이셨다. 그분은 가끔씩 '솔직히 이정도 실력이면 강남이나 한남동에서 열어도 괜찮은데, 누님 건강이 안좋으셔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집은 없어지고 그 집 위치에 새로 생긴 향언니에 나는 가끔 가곤 한다. 그 분은 지금 한남동이나 강남에서 술집을 여셨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신촌 이자까야의 양대산맥은 영원히 컨템포러리의 잇빠이와 오서독스의 단뽀뽀라고 생각한다. 지금 있는 하이카라야나 간바리야는 그 집들에 비하면 많이 아쉽다. 내가 대학에 있는 동안 사라진 것은 술집 뿐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IMF를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축구시위와 촛불응원을 경험한 우리 세대는 어떤 의미에서 '조직화된 학생 운동'의 마지막 세대였다. 존경하는 활동가 유재명(아이츄판다, 로 유명하다)이 쓴 '로마 이후'는 오습복반(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인가 하는 이름이었다)에 감히 '오습복반 따위보다' 라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 내가 읽은 글 중에 가장 서글프고 가장 아름다운 글 중 하나였다. 그러한 학생운동과 함께 몇 가지 술집이 사라졌다. '연세대 학생운동 최고의 위기는 지푸라기가 문을 닫으면서 시작되었다'는 농담이 있었다. 03년인가, 그야말로 대중운동을 위한 최선의 조건을 갖추고 있던 대형 술집 지푸라기가 문을 닫았다. 과반/단과대 학생회 단위에서 갈 수 있는 시끌벅적하고 조잡한 술집이 그렇게 사라졌다. NL친구들이 자주 가던 어두운 그러나 쾌활한 술집 신광호프도 어느새 그렇게 사라졌다. 전대협 출신의 누님이 운영하던, 난로도 에어컨도 스피커도 없이 한때 서른즈음에를 압도하는 인기를 구가하던 독수리주도 2년인가 3년 만에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밥을 공짜로 주던 하늘내음도 사라졌다. 서울대엔 아직 녹두가 남아있는데. 운동/운동가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노래패 애들이 공연과 술을 위해 자주 가곤 하던 52번가도 어이없는 이유로 사라졌다. 술집 주인들도 사람이고, 그들도 사랑을 하고 그들도 증오를 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술집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한 죽음들과 함께 부활도 있었다. 90년대에 그런 '운동을 위한 술집'으로 존재하던 술집 아름나라가 있었다. 아름나라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몇 년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최근에 신촌 역 근처에 다시 생겼다. 여전히 주인 아저씨가 직접 농사한 유기농 재료들로 음식을 만든다. 적지 않은 경영난 상태로 알고 있어 슬프다. 힘들게 부활한 아름나라가 죽지 않기를 때로 기원한다. 나는 이렇게 신촌의 술집들을 스쳐왔다. 그리고 이렇게 좀더 나이를 먹게 되면 올드바나 템테이션, 벼락맞은 대추나무 등속의 어른의 세계로 떠나게 될 것이다. 혹은 나와 술을 함께 했던 어떤 친구들처럼 아예 술을 떠나거나 삶을 떠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마실거다. 그리고 쓴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앞으로도 쓸 것이다. 계속. 그렇게 술집에 관한 엽편 소설들을 써 볼까 한다. 술집에 대한 개괄적인 평이나, 내 개인의 경험 같은 건 쓰기에 별로 재미있는 일이 되지 못한다. 나는 평이한 삶을 살아왔고 그렇기에 장난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천천히 그렇게 쓰다 보면 무엇인가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며. 자아, 어느 집을 소재로 먼저 써 볼까. 오랜만에 느낀 활력을 정리하며 감기몸살로 모든 것을 날린 하루와 함께 글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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