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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nod사의 압생트를 재입고하였습니다. 가격은 샷 20,000 보틀은 재고 관계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심심해서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한국의 현존하는 아나키스트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 현재 강정에서 평화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조약골을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다. 계기란 우연한 것이다. 나는 아나키즘이라는 정치철학을 검색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대중화 이전 시대의 불법적인 문서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아나키즘 정치철학과 마주치게 되었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첫사랑을 시작했다. 동갑이었던 상대방은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노무현의 팬클럽, 노사모의 초기 회원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도 노사모에 가입하게 되었다. 천 몇 번 째 회원이었던가 나는. 계기란 우연인 것이다. 연애를 하기 전에는 딱히 우리나라 해수부 장관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했다. 나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나는 학생회와 학회와 학내언론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앞에서 병역거부 지지 1인시위를 하다가 우연히 길을 가시던 친척어른을 만나서 인사를 나눈 기억이 난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군홧발의 시대가 끝나고 폭력의 시대가 끝난 2002년의 한국, 서울에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찍어 본 것 같기도 하다. 횃불을 들고 전진하는 시위대를 취재하고, 기사를 만들고. 아쉽게도 나는 일을 많이 벌리는 편이지만, 그닥 치열한 편은 아니었다.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치고, 일을 또 벌이고, 사고를 또 치고. 그러다 잠적하고. 그 왜 있잖은가. 입좌파. 적을 많이 만들고 친구를 많이 잃었다. 그러다가 사회당에 가입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내가 일하던 학생회/학회/학내언론에는 전학협, 이란 조직의 좌파들이 득실거렸다. 사회당 학생조직은 아니었지만, 대충 25.7% 정도는 사회당 학생조직에 가까웠던 그런 집단이었다. 근묵자흑이랄까, 그런 곳에 있다 보면 으례히 그런 정당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서술하자니 너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정확히 언제 입당원서를 썼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시의 당 슬로건은 '가장 억압받는 자와 가장 먼저 연대한다'였던 것 같다. 그게 좋았던 것 같다. 한창 월드컵과 장갑차 사건과 반전운동이 퍼져가던 2002년, 나는 월드컵엔 별 관심이 없었고 장갑차 사건 관련 시위와 반전운동은 동의는 했으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갑차 사건은 월드컵을 승계하는 과도한 민족주의적 경향과, 소수자와 피해자에 대한 배려 없이 '희생된 여성'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이 불편했고, 반전운동은 반전운동 자체는 좋았으나 당시 반전운동에 열심히 결합하던 지인과의 논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상승하는 정세를 위해 전체 운동이 중요하다. 조그마한 철거민 투쟁보다 반전 운동에 결합해라, 라는 논지가 싫었다. 그러던 때, 사회당은 운동권들도 잘 신경쓰지 않던 철거민 문제에 강력하게 결합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철거민 운동을 하던 아저씨는 술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한총련이나 이런 좀 큰 단체에서도 와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잘 될텐데.' 비록 우리는 작았지만 그곳에 있는 내가, 그리고 당원들이 자랑스러웠다. 그 즈음에 사회당에 입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투표권도 없던 6월의 서울시장 선거와 12월의 대통령 선거의 선거운동을 했다. 작았다. 대충 당시 당원이 오천 명 정도가 되었던 것 같았는데, '돈세상을 뒤엎어라'의 김영규 후보는, '불심으로 대동단결'의 김길수 후보에게도 패배했다. 오천 사회주의자가 땡초 하나 못이기냐는 비아냥이 당 게시판에서도 나오고 그랬다. 뭐. 할 수 있나. 우리는 작은데. 민노당이 나타나고 뭐가 나타나고 뭐가 생기고 2003년이 되었다. 그렇다. 의회가 이라크전 참전안을 통과시킨 2003년 4월 2일이 왔다. 어느날처럼 나는 국회 앞 시위대를 취재하고 있었고, 그 날 오후 일곱시에 '참전안이 통과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분노했다. 더욱 나를 분노케 한 건, 소위 '시민사회' 혹은 '민주노동당'의 방송차였다. 대통령은 노무현-내가 고등학교 때 그렇게 좋아하던-이었고, 한나라당이 이라크전 참전을 단독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들은 '이라크전 참전안이 통과되었으니 한나라당사로 진격합시다'라고 외쳤다. '국회로!'를 외치는 사람들과 '한나라당사로!'를 외치는 대오는 혼란스러웠고, 나는 화가 났다. 아니, 한나라당사를 왜 가는가. 국회로 가야 하지 않는가. 그러던 사이, 당시 사회당 당대표였는지 상임위원이었는지 하는 신석준 씨가 방송차에 올라와서 발언했다. '많이 참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외칠 때입니다. 노무현 정권 퇴진!' 적어도 당시에는, 외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구호였다. 그런 구호를 우리 당이, 우리 당의 사람이, 커다란 대중 집회에서 처음으로 외쳤다. 당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함께하던 학생 조직은 몇 가지 논쟁이 오가고 사라졌다. 선배들이 사라졌다. 내 옆에서도, 그리고 당에서도. 에이. 나도 탈당이나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입당을 할 때는 응당한 이유가 있어서 입당했으니, 적어도 응당한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탈당하지 말자. 그리고 군대에 갔다. 제대를 했다. 몇 번 당대회에 나갔다. 당대회라고 해서 엄청 큰 컨벤션홀에서 기자들이 오고 명사들이 오고 하는 게 아닌, 한 오십명 들어가면 앉을 자리도 잘 나지 않는 마포의 조그만 중앙당사에서 당원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였다. 제대를 하고 할 게 없어서 당 활동이나 할까 하고 기웃거렸는데, 늙고 지치고 귀찮아서 곧 그만두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많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아쉽게도 나의 게으름으로 새로운 일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늘 사회당을 지지했다. 투표를 하고, 주위 사람들을 독려하고. 우연히 일하게 된 논술학원에서 당원을 몇 명 만나고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아아, 나의 사랑. 그런 정당이 이제 없어졌다. 아니, 진보신당과 통합하였다. 아니, 진보신당과 흡수통합되었다. 아니, 진보신당에 흡수되었다. 법적으로는 며칠 전에 없어졌고, 내일이면 최초의 진보신당-사회당 통합당대회를 한다. 내가 10여년동안 당원이었던, 약 15년간 한국 사회에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유일한 좌파정당, 사회당'이며, '덕후위원회'라는 위원회를 정식 부문위원회로 인정했던 민주적인 정당, 사회당이 없어졌다. 아나키즘과 노무현을 거쳐, 가장 오랜 기간동안 내가 지지하던 이념을 세력화한 조직이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 며칠간 당 강령과 총선 구호와 합당에 대한 내부에 대한 논쟁을 뒤로 한 채 당원 명부만 고스란히 바친 무능한 지도부(그래, 불과 몇년 전에 가장 급진적인 구호를 외쳤던 신석준)와 노심조에 낚이기 이전부터 '대중진보' 어쩌고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진보신당을 쌍욕을 해가며 쭉 욕해왔기에 이 글에서 더 그들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 내가 언젠가부터 당비를 안냈으니까 할 말도 없다. 비록 당비는 안냈지만 한 세 명 정도는 내가 당원으로 가입시키고 선거 때 마다 한 열 표 정도는 조직했던, 사회당이 이제 없어졌다. 내일이면 통합 당대회가 열린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손님 중 한명이 직장을 그만두며, '회자정리 거자필반'에 대해 잠깐 고민하다가 '내가 살아보니 회자정리는 알겠는데 거자필반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래. 나도 그런 것 같다. 만났으니 이제 헤어짐이 있는 거다. 헤어졌는데 다시 오는 일은, 아마 없겠지. 정치에 감성은 필요하지 않지만, 막상 이것이 내 일이 되고 나니 어떠한 정치적인 사고도 하기가 힘들다. 장사하고, 새벽에 롤하고. 장사하고, 새벽에 롤하고. 장사하고, 새벽에 롤하고. 울분을 토하는 사회당 합당 반대파 당원들과 술을 마시고. 그러다 문득 오래 글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그동안 마음과 몸이 너무 편했다. 역시 불편함이 있어야 되나. 마음이 불편하다. 사회당이 없어졌다. 그래서 짧게 글을 쓴다. 기사도 잘 뜨지 않는 군소 정당의 일이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래도 '아 사회당이 있었는데 이제 통합되었구나'하고 알아주었으면 슬픔이 조금 덜 할 거 같아 짧게 쓴다. 쓰고 나니 문득, 안승민의 짤방이 떠오른다. '너희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아느냐!' 그래서 제목을 바꾸었다. 뭐. 생각해보니 나는 작년에 서버도 잃었다. 나의 전쟁 27섭 카라잔은 전쟁 13섭으로 통합, 아니 흡수통합, 아니 흡수되었다. 아. 인생이 왜 이모양이야. 생각해보니 나는 작년에 응원팀도 잃었다. 안녕, SK와이번스. 아 뭐 이래 진짜. 평생 정치 혐오가 없는 편이었다. 외려 정치 혐오자들을 혐오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일이다. 고민해야지. 모든 놈들이 남근같은 거 맞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뭐라도 하고 누구라도 찍어야지. 그래왔는데 지금은, 힘들다. 잠깐 정치에 대한 고민을 놓고 야구나 보며 롤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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